오직 나의 신으로 (01.18.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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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88회 작성일 Jan 19 2026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1월 18일
본문: 스가랴 4:1–10
제목: 오직 나의 신으로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이라는 새해의 문턱을 넘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셨습니까? 새해라는 이름은 늘 희망을 약속하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의 현실은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삶의 무게는 작년에서 올해로 고스란히 넘어왔습니다. 건강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경제적 숨통은 여전히 조여 오며, 가족과의 관계 또한 쉽게 풀리지 않은 채 멈춰 서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특히 열심히 살아온 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달라진 게 없을까?”
“기도도 했고, 버틸 만큼 버텼는데 왜 상황은 그대로일까?”
애쓰면 애쓸수록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제자리에 묶여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스며드는 무력감.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거대한 벽,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성벽’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스룹바벨 역시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바벨론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박수와 영광이 아니라, 무려 15년 동안 멈춰 선 공사 현장이었습니다. 시작은 있었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꿈은 분명했지만, 현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스룹바벨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며 따라붙은 실패자의 시선,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느끼는 깊은 무력감, 그리고 기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하나님의 침묵. 그가 서 있던 성전 터는 비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더 공허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 이제 더는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자리, 바로 그 지점이 스룹바벨이 서 있던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의외였습니다. 더 많은 전략도, 더 강한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문장으로 인간의 모든 계산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인간의 힘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선언입니다.
2026년의 시작점에서, 더 잘해 보겠다는 다짐보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라는 고백으로 다시 서는 것, 그 자리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6절)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인생의 성전 재건이 멈추면 ‘자본’이 부족하거나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룹바벨의 성전 공사가 15년이나 중단된 본질적인 이유는 자원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동력'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치명적인 독소가 퍼져 있었습니다.
• 두려움에 장악된 것입니다: 대적들의 끊임없는 위협 앞에 “하면 죽는다”는 공포가 그들을 마비시켰습니다.
• 패배주의의 확산입니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공동체를 덮었습니다.
• 영적 탈진입니다: 더 이상 의욕도 열심도 없이 고갈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현실의 안위가 먼저 우선순위를 차지할 때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힘(힘과 능)은 외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금세 바닥을 드러냅니다. 내 의지와 결단은 상황의 파도 앞에 너무나 무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쳐 쓰러진 스룹바벨에게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 속의 등대는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보통 성막의 등대는 제사장이 아침저녁으로 올리브 기름을 직접 채워야 불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이 환상 속의 등대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두 감람나무에서 뻗어 나온 관을 통해 ‘기름’이 끊임없이, 직접 등대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공급원이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름(노력)은 금방 고갈되지만, 하나님의 기름(성령)은 원천에서부터 마르지 않고 쏟아집니다.
오늘 우리의 진짜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자기 주도권’이 너무 강해서, 정작 성령의 기름이 흘러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38)
우리가 애써 짜내는 노력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 7:39). 인간의 기름은 금방 고갈되지만, 성령의 기름은 마르지 않습니다.
이번 신년 영적 대각성 새벽집회는 “올해는 더 열심히 해보자”는 내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힘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합니다.”라며 백기 투항하는 자리입니다. 내 손에 쥐고 있던 낡은 기름병을 내려놓고, 하늘의 두 감람나무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주님, 이제는 제 방식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 나를 채워 주옵소서.”
이 고백이 터져 나올 때, 15년 동안 멈춰 있던 여러분 인생의 성전 공사는 비로소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2. 성령에 붙잡힌 자 앞에서 큰 산은 반드시 평지가 됩니다 (7–9절)
하나님은 지금 스룹바벨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 공사를 가로막는 집요한 방해 세력, 바닥난 재정, 차갑게 식어버린 민심, 그리고 지도자로서 겪는 한계까지—그 모든 장애물이 스룹바벨 앞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그 산의 높이를 측정하거나 산을 옮길 전략을 설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은 그 산을 향해 직접 명령하십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7절)
이것이 성령의 방식입니다. 인간은 산 밑에서 “이 산은 너무 높다, 길이 없다”며 산을 분석하고 낙심합니다. 하지만 성령에 붙잡힌 사람은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봅니다. 산은 인간의 의지를 꺾고 기를 죽일 수는 있지만, 만물의 주인이신 성령의 명령 앞에서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를 압도하던 문제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평지’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이 시작하셨는데 왜 끝내지 않으실까?”라며 의심합니다. 그러나 9절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사람은 환경에 따라 포기하고, 상황에 따라 중단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결코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비록 떨리고 연약할지라도, 그 손을 붙들고 계신 분이 성령이시기에, 공사는 반드시 끝이 납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과 사명은 결코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앞길을 막고 서 있는 그 ‘산’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십 수년째 해결되지 않는 가정의 고질적인 문제입니까?
• 밤잠을 설치게 하는 재정적 압박입니까?
• 고칠 수 없다고 포기해버린 질병과 육신의 연약함입니까?
이제 그 산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혼자 속삭이지 마십시오.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내 힘으로 산을 깎으려 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면 태산 같은 가로막음도 한순간에 평탄한 길이 됩니다. 이 아침, 그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의 삶에 휘몰아치기를 축원합니다.
3. 작은 일을 멸시하지 말고, 오늘 나의 ‘다림줄’을 잡으십시오 (10절)
성전 재건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환호했던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 시대의 화려했던 성전을 기억하던 노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실망했습니다. “이게 무슨 성전이냐? 옛날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지 않으냐?” 주변의 냉소와 비교는 갓 시작된 성령의 역사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손에 연장을 들었으나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10절)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웅장한 건물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다림줄’을 주목하셨습니다. 다림줄이란 건물을 지을 때 벽돌을 수직으로 곧추 세우기 위해 추를 달아 내린 줄을 말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언제 이 큰 성전을 다 짓느냐’며 결과에 집착했지만, 하나님은 “오늘 네가 내 기준(다림줄)에 맞춰 벽돌 하나를 제대로 놓고 있느냐”를 보셨습니다. 여기서 다림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비록 느리고 작아 보여도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끝까지 가겠다는 거룩한 고집입니다. 내 뜻과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완공식보다, 보잘것없는 현장에서 다림줄을 쥐고 땀 흘리는 그 ‘작은 순종’을 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종종 ‘작은 일’을 멸시합니다. “이 짧은 기도로 뭐가 바뀔까?”, “나 혼자 친절을 베푼다고 세상이 변할까?” 그러나 성령의 역사 안에서는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 여러분이 골방에서 흘리는 신음 섞인 기도는 열방을 흔드는 진동이 됩니다.
•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정직한 선택은 사단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폭탄이 됩니다.
• 오늘 여러분이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결단한 그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기 전에 오늘 당장 우리가 잡아야 할 ‘순종의 다림줄’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하루, 단 10분이라도 온전히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바쁜 일과를 시작하기 전, 혹은 잠들기 전 10분만이라도 좋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세상의 계산기를 멈추고 이렇게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성령님, 오늘도 제 힘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제 인생의 다림줄을 주님께 맞춥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작은 10분의 다림줄이 여러분의 무너진 일상을 곧게 세울 것입니다. 비록 눈앞의 성벽은 여전히 높고 상황은 더뎌 보일지라도, 그 작은 다림줄을 놓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그 작은 순종을 통해 마침내 여러분 인생의 성전을 완공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산을 평지로 만드시는 방식은 때로 단번에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다림줄을 놓지 않도록 붙드시는 인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2026년의 문을 열며 ‘영적 대각성’이라는 거룩한 부름 앞에 섰습니다. 대각성(Awakening)이 무엇입니까?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 깨어나는 것입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절망에서 깨어나고, "오직 성령으로는 반드시 된다"는 소망에 대해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참 많이 애썼습니다. 내 힘으로 인생의 성전을 지어보려 밤잠을 설쳤고, 내 능력으로 ‘큰 산’을 옮겨보려 손톱이 빠지도록 흙을 파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지친 몸과 메마른 영혼, 그리고 여전히 멈춰 서 있는 공사 현장뿐이지 않습니까?
이제 올해 우리 인생의 판도를 바꿉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첫째로, 성령의 역사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내 힘으로 하겠다고 하는 이상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정직한 항복이 터져 나오는 그 지점이 바로 성령께서 일하시는 시점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 여러분의 경험, 실력, 계산기를 다 내려놓으십시오.
둘째, 스룹바벨이 15년의 패배주의를 끊어내고 다시 다림줄을 잡았을 때, 하늘의 기름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대각성집회는 내 영혼의 다림추를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휘청이던 마음을 고정하고, 마르지 않는 성령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산을 보지 말고 산을 평지로 만드실 성령을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질병의 산, 가난의 산, 불황의 산, 깨어진 관계의 산을 향해 더 이상 한숨 쉬지 마십시오. 이번 집회 기간 내내 소리 높여 외치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영 앞에 네가 평지가 되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멈춰버린 여러분의 인생 성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다림줄을 잡고 서 있는 한, 성령께서 반드시 그 일을 마치실 것입니다(9절).
오늘 여러분 인생에서 '성령의 시대'가 동트는 역사적인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분의 인생 돛을 올리십시오. 기도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날짜: 2026년 1월 18일
본문: 스가랴 4:1–10
제목: 오직 나의 신으로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이라는 새해의 문턱을 넘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셨습니까? 새해라는 이름은 늘 희망을 약속하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의 현실은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삶의 무게는 작년에서 올해로 고스란히 넘어왔습니다. 건강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경제적 숨통은 여전히 조여 오며, 가족과의 관계 또한 쉽게 풀리지 않은 채 멈춰 서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특히 열심히 살아온 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달라진 게 없을까?”
“기도도 했고, 버틸 만큼 버텼는데 왜 상황은 그대로일까?”
애쓰면 애쓸수록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제자리에 묶여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스며드는 무력감.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거대한 벽,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성벽’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스룹바벨 역시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바벨론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박수와 영광이 아니라, 무려 15년 동안 멈춰 선 공사 현장이었습니다. 시작은 있었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꿈은 분명했지만, 현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스룹바벨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며 따라붙은 실패자의 시선,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느끼는 깊은 무력감, 그리고 기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하나님의 침묵. 그가 서 있던 성전 터는 비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더 공허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 이제 더는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자리, 바로 그 지점이 스룹바벨이 서 있던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의외였습니다. 더 많은 전략도, 더 강한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문장으로 인간의 모든 계산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인간의 힘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선언입니다.
2026년의 시작점에서, 더 잘해 보겠다는 다짐보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라는 고백으로 다시 서는 것, 그 자리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6절)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인생의 성전 재건이 멈추면 ‘자본’이 부족하거나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룹바벨의 성전 공사가 15년이나 중단된 본질적인 이유는 자원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동력'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치명적인 독소가 퍼져 있었습니다.
• 두려움에 장악된 것입니다: 대적들의 끊임없는 위협 앞에 “하면 죽는다”는 공포가 그들을 마비시켰습니다.
• 패배주의의 확산입니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공동체를 덮었습니다.
• 영적 탈진입니다: 더 이상 의욕도 열심도 없이 고갈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현실의 안위가 먼저 우선순위를 차지할 때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힘(힘과 능)은 외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금세 바닥을 드러냅니다. 내 의지와 결단은 상황의 파도 앞에 너무나 무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쳐 쓰러진 스룹바벨에게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 속의 등대는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보통 성막의 등대는 제사장이 아침저녁으로 올리브 기름을 직접 채워야 불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이 환상 속의 등대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두 감람나무에서 뻗어 나온 관을 통해 ‘기름’이 끊임없이, 직접 등대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공급원이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름(노력)은 금방 고갈되지만, 하나님의 기름(성령)은 원천에서부터 마르지 않고 쏟아집니다.
오늘 우리의 진짜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자기 주도권’이 너무 강해서, 정작 성령의 기름이 흘러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38)
우리가 애써 짜내는 노력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 7:39). 인간의 기름은 금방 고갈되지만, 성령의 기름은 마르지 않습니다.
이번 신년 영적 대각성 새벽집회는 “올해는 더 열심히 해보자”는 내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힘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합니다.”라며 백기 투항하는 자리입니다. 내 손에 쥐고 있던 낡은 기름병을 내려놓고, 하늘의 두 감람나무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주님, 이제는 제 방식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 나를 채워 주옵소서.”
이 고백이 터져 나올 때, 15년 동안 멈춰 있던 여러분 인생의 성전 공사는 비로소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2. 성령에 붙잡힌 자 앞에서 큰 산은 반드시 평지가 됩니다 (7–9절)
하나님은 지금 스룹바벨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 공사를 가로막는 집요한 방해 세력, 바닥난 재정, 차갑게 식어버린 민심, 그리고 지도자로서 겪는 한계까지—그 모든 장애물이 스룹바벨 앞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그 산의 높이를 측정하거나 산을 옮길 전략을 설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은 그 산을 향해 직접 명령하십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7절)
이것이 성령의 방식입니다. 인간은 산 밑에서 “이 산은 너무 높다, 길이 없다”며 산을 분석하고 낙심합니다. 하지만 성령에 붙잡힌 사람은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봅니다. 산은 인간의 의지를 꺾고 기를 죽일 수는 있지만, 만물의 주인이신 성령의 명령 앞에서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를 압도하던 문제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평지’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이 시작하셨는데 왜 끝내지 않으실까?”라며 의심합니다. 그러나 9절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사람은 환경에 따라 포기하고, 상황에 따라 중단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결코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비록 떨리고 연약할지라도, 그 손을 붙들고 계신 분이 성령이시기에, 공사는 반드시 끝이 납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과 사명은 결코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앞길을 막고 서 있는 그 ‘산’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십 수년째 해결되지 않는 가정의 고질적인 문제입니까?
• 밤잠을 설치게 하는 재정적 압박입니까?
• 고칠 수 없다고 포기해버린 질병과 육신의 연약함입니까?
이제 그 산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혼자 속삭이지 마십시오.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내 힘으로 산을 깎으려 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면 태산 같은 가로막음도 한순간에 평탄한 길이 됩니다. 이 아침, 그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의 삶에 휘몰아치기를 축원합니다.
3. 작은 일을 멸시하지 말고, 오늘 나의 ‘다림줄’을 잡으십시오 (10절)
성전 재건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환호했던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 시대의 화려했던 성전을 기억하던 노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실망했습니다. “이게 무슨 성전이냐? 옛날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지 않으냐?” 주변의 냉소와 비교는 갓 시작된 성령의 역사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손에 연장을 들었으나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10절)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웅장한 건물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다림줄’을 주목하셨습니다. 다림줄이란 건물을 지을 때 벽돌을 수직으로 곧추 세우기 위해 추를 달아 내린 줄을 말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언제 이 큰 성전을 다 짓느냐’며 결과에 집착했지만, 하나님은 “오늘 네가 내 기준(다림줄)에 맞춰 벽돌 하나를 제대로 놓고 있느냐”를 보셨습니다. 여기서 다림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비록 느리고 작아 보여도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끝까지 가겠다는 거룩한 고집입니다. 내 뜻과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완공식보다, 보잘것없는 현장에서 다림줄을 쥐고 땀 흘리는 그 ‘작은 순종’을 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종종 ‘작은 일’을 멸시합니다. “이 짧은 기도로 뭐가 바뀔까?”, “나 혼자 친절을 베푼다고 세상이 변할까?” 그러나 성령의 역사 안에서는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 여러분이 골방에서 흘리는 신음 섞인 기도는 열방을 흔드는 진동이 됩니다.
•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정직한 선택은 사단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폭탄이 됩니다.
• 오늘 여러분이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결단한 그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기 전에 오늘 당장 우리가 잡아야 할 ‘순종의 다림줄’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하루, 단 10분이라도 온전히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바쁜 일과를 시작하기 전, 혹은 잠들기 전 10분만이라도 좋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세상의 계산기를 멈추고 이렇게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성령님, 오늘도 제 힘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제 인생의 다림줄을 주님께 맞춥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작은 10분의 다림줄이 여러분의 무너진 일상을 곧게 세울 것입니다. 비록 눈앞의 성벽은 여전히 높고 상황은 더뎌 보일지라도, 그 작은 다림줄을 놓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그 작은 순종을 통해 마침내 여러분 인생의 성전을 완공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산을 평지로 만드시는 방식은 때로 단번에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다림줄을 놓지 않도록 붙드시는 인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2026년의 문을 열며 ‘영적 대각성’이라는 거룩한 부름 앞에 섰습니다. 대각성(Awakening)이 무엇입니까?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 깨어나는 것입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절망에서 깨어나고, "오직 성령으로는 반드시 된다"는 소망에 대해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참 많이 애썼습니다. 내 힘으로 인생의 성전을 지어보려 밤잠을 설쳤고, 내 능력으로 ‘큰 산’을 옮겨보려 손톱이 빠지도록 흙을 파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지친 몸과 메마른 영혼, 그리고 여전히 멈춰 서 있는 공사 현장뿐이지 않습니까?
이제 올해 우리 인생의 판도를 바꿉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첫째로, 성령의 역사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내 힘으로 하겠다고 하는 이상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정직한 항복이 터져 나오는 그 지점이 바로 성령께서 일하시는 시점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 여러분의 경험, 실력, 계산기를 다 내려놓으십시오.
둘째, 스룹바벨이 15년의 패배주의를 끊어내고 다시 다림줄을 잡았을 때, 하늘의 기름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대각성집회는 내 영혼의 다림추를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휘청이던 마음을 고정하고, 마르지 않는 성령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산을 보지 말고 산을 평지로 만드실 성령을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질병의 산, 가난의 산, 불황의 산, 깨어진 관계의 산을 향해 더 이상 한숨 쉬지 마십시오. 이번 집회 기간 내내 소리 높여 외치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영 앞에 네가 평지가 되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멈춰버린 여러분의 인생 성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다림줄을 잡고 서 있는 한, 성령께서 반드시 그 일을 마치실 것입니다(9절).
오늘 여러분 인생에서 '성령의 시대'가 동트는 역사적인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분의 인생 돛을 올리십시오. 기도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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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ByVGOcVJmio 30회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