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이 기도하는 집 (01.11.2026)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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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01.11.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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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95회 작성일 Jan 12 2026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1월 11일
본문: 역대하 7:1–3 (참고: 열왕기상 8장, 마가복음 11:15–17)
제목: 만민이 기도하는 집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 새해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참으로 요동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 전해진 새해 벽두의 뉴스들은 우리를 설렘보다는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강대국들은 자국 우선주의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기술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일상이 되는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해졌고, 정보는 우리 손안에 넘쳐나며, 기술은 ‘불가능은 없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서 우리 인류는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국가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경제적 경계는 높아지며,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정체 모를 분노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풍요로운 선진국 사회에서 왜 이유 없는 분노 범죄가 늘어나고, 성공한 이들의 삶이 허무하게 무너집니까?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술이 몸의 질병은 고칠지 모르나, 텅 빈 영혼의 갈증은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도 영혼이 겪는 ‘존재론적 불안’ 앞에서는 침묵할 뿐입니다.

한 심리학자가 이런 통찰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아서 무너진다.”

세상이 ‘각자도생’을 외치며 “네 힘으로 살아남으라”고 압박할 때, 기도가 사라진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신으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에 짓눌려 영혼은 질식해 갑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인간은 본래 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와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질서가 해체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 불안정한 새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최신 정보’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기도의 무릎’입니다. 거친 파도가 밀려올수록 배는 닻을 깊이 내려야 하듯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머물 곳은 오직 하나님 앞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교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거센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1. 화려한 성전보다 소중한 것: 예수님이 분노하신 이유

2026년의 세상이 화려한 기술과 빌딩으로 겉모습을 치장하듯,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 역시 외형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헤롯 성전은 거대한 대리석과 찬란한 금으로 치장되어, 식민 지배국이었던 로마 제국조차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그 거대한 건물을 보며 자신들의 신앙도 그 성벽처럼 견고하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전에 발을 들이신 예수님은 감탄 대신 분노를 쏟아내셨습니다. 주님은 왜 채찍을 휘두르며 상을 엎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성전의 가장 바깥쪽, 즉 온 열방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의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이방인의 뜰’이 기도의 소리가 아닌, 장사꾼들의 고함과 잇속을 챙기는 소리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창 12:3)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전은 그 언약대로 온 열방(만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영적 통로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통로를 장사판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세상의 풍파에 지쳐 기도의 한 자락을 찾아온 이들을 문전박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광경을 보시고 정곡을 찌르는 선언을 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 (막 11:17)

여기서 말씀하신 ‘강도’는 단순히 재물을 훔치는 자가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경고했듯이,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고, 종교적 형식만 남은 상태, 삶의 변화는 없으면서 예배의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소통인 ‘기도’가 사라져 영적으로 텅 비어 있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강도의 소굴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최첨단 음향장비와 세련된 프로그램은 갖추었지만, 혹시 우리끼리만 만족하는 ‘닫힌 공동체’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성전은 세상에서 소외된 자, AI 시대에 방향을 잃은 자, 영적 갈증에 목마른 ‘만민’이 찾아와 위로를 얻는 기도의 통로입니다. 내 문제에만 매몰된 기도를 넘어, 고통받는 이웃과 열방을 품는 중보의 기도가 회복될 때, 우리 교회는 비로소 ‘강도의 소굴’이 아닌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적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역대하 7장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장엄하고 가슴 벅찬 예배의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무릎을 꿇어 기도를 마쳤을 때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영광에 압도되어 감히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이 성전 되게 하는 세 가지 영적 질서를 발견합니다.
• 언약의 성취: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 인간의 기도: 솔로몬이 그 약속을 붙들고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시며 "내가 이곳에 거하겠다"고 당신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광’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보드(Kabod)’의 의미를 우리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카보드’는 단순히 반짝이는 빛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무겁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무게 있는 실재’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불안을 다 합쳐도 도저히 누를 수 없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 자리를 꽉 채우는 상태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성전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솔로몬 성전이 헤롯 성전과의 다른 점입니다. 외관으로는 둘 다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그러나  성전은 값비싼 대리석이나 화려한 금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성도의 기도 위에 하나님의 무게 있는 임재(카보드)가 내려앉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회가 재미없다”며 떠나갑니다.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교회보다 화려한 볼거리, 자극적인 재미가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교회의 독특하고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이 약속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전율 돋는 선언입니다. 2026년의 불안한 정세와 경제적 위기가 아무리 우리를 짓눌러도, 하나님의 영광(카보드)이 임하는 순간 그 위기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각자의 처소에서도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언약의 백성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의 기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언약을 붙들고 한마음으로 모여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자리에 더욱 뜨겁게 임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풍요보다 크고 무거운 주님의 영광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언약’에 근거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솔로몬의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 우리를 잘살게 해주시고 이 성전이 번성하게 해주십시오”라는 막연한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철저하게 ‘언약(Covenant)’이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세워진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두 가지 큰 약속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그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게 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왕위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지금 자기 눈앞에 완공된 성전을 보며 첫 번째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붙들고 담대하게 두 번째 약속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 성전을 주셨으니 이제 약속하신 대로 우리 가문과 이 백성을 영원히 지켜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담력입니다. 내 신앙이 좋아서가 아니라,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당당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역대기’가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막 돌아온 직후였습니다. 나라는 이미 망했고,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은 형체도 없이 파괴되었으며, 왕조는 끊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역대기 기자는 이 성전 봉헌 기도를 다시 들려주며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과 성전이 무너졌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 즉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한 사랑인 ‘헤세드(Hesed)’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애굽에서 신음하던 노예들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고 구원하신 하나님
• 보잘것없는 목자였던 다윗을 선택하여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
• 백성이 범죄하여 매를 드시면서도, 결코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부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2026년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우리 삶에 베푸셨던 은혜의 흔적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비록 2026년의 출발이 불안하고 세상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지만, 과거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은 올해도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내 사정을 하나님께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내 삶으로 끌어당기는 일입니다. 2026년의 출발이 불안하십니까?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펼치십시오.
•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 13:5)
•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이 말씀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렇게 약속하셨으니 응답해 주십시오!” 이것이 언약 백성의 담력입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을 굳건히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2026년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우리 앞에 밀려와 있습니다. 세상은 위기라고 말하지만, 성도에게 위기는 곧 하나님의 ‘카보드’, 그 영광의 무게를 경험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이제 ‘영적 대각성 새벽기도회’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추운 새벽에, 단잠을 깨우고 이 자리에 모여야 합니까?

역대하 7장에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온 것은 솔로몬 혼자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한마음으로 모여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부르짖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덮었습니다. 혼자 타는 숯불은 금방 꺼지지만, 함께 모인 장작불은 거대한 불꽃이 되어 차가운 세상을 녹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함께 모여 부르짖을 때, 우리 각자의 심령 속에 꺼져가던 기도의 등불이 다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올해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문제들을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지 마십시오.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기도의 집으로 나아오십시오. 우리가 새벽을 깨우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자녀들의 앞길을 여시며, 이 나라의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하 7:14)

이 약속은 오늘 우리를 향한 선언입니다. 이번 새벽기도회는 단순히 한 주간의 행사가 아닙니다. 2026년이라는 항해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임재라는 돛을 다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뉴스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자리로 동참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리가 비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도 그만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모여 부르짖읍시다. 우리가 무릎 꿇을 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은 2026년의 황무지에서 기적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 새벽, 기도의 집에서 하나님의 ‘카보드’를 경험하고, 세상을 이길 담대함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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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심 기도 제목]
1. 임재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외형을 자랑하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카보드)이 가득한 기도의 집이 되게 하소서.
2. 언약을 위하여: 불안한 2026년의 정세 속에서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헤세드)만을 붙들고 승리하게 하소서.
3. 새벽기도회를 위하여: 이번 영적 대각성 새벽기도회를 통해 개인과 가정이 회복되고, 공동체 위에 성령의 불이 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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