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12.28.2025)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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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12.28.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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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43회 작성일 Dec 29 2025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12월 28일
본문: 눅 22:31-34
제목: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몇 해 전, 한 산악인이 빙벽을 오르다 그만 손을 놓쳐 추락할 뻔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를 살린 것은 자신의 힘이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더 이상 매달릴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를 살린 것은 위에서 끝까지 로프를 놓지 않고 붙들고 있던 동료의 손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산악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버틴 게 아니라, 위에서 누군가가 나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꼭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덧 2025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한 해의 끝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잘 버텨왔는가?”
“내 믿음은 괜찮은가?”

어떤 분들에게는 감사가 넘치는 한 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 어떤 분들에게는 “정말 많이 흔들렸고, 겨우 여기까지 왔다”는 말밖에 남지 않는 한 해였을 수도 있습니다. 계획은 어그러졌고, 기도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신앙적으로도 ‘잘 믿었다’고 말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원래 쉬운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겠다는 결단 자체가 이미 시대를 거슬러 가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해를 받고, 외로워지고, 때로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현실을 너무도 잘 아셨기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셨다면, 과연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우리의 믿음은 진즉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예배자로 서 있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강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넘어질 뻔한 순간이 있었고, 무너질 것 같았던 시간도 있었지만,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신앙의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패보다 더 강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미리 그를 위해 기도하시며, 그의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의 이야기는, 지난 2025년 한 해 우리의 연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놓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붙잡고, 그 은혜로 2026년 새해를 향해 담대히 걸어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연약함의 발견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배우게 되면 두 가지 사실을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 앞에 선 우리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거울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처럼 우리 안에 들어있는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참모습을 모릅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전략은 한사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모습에 도취되어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제자들의 모습도 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만찬임에도 제자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눅 22:24)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지금 제자들은 마치 자기 엄마가 세상 떠난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 철없는 아이와도 같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자 모든 제자들은 깜짝 놀랐어요. 이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예수님!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버릴찌라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마 26:33)라고 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 자신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알고 계셨어요. 예수님은 베드로를 넘어뜨리기 위한 사단의 도전이 얼마나 거센지, 그리고 이 도전 앞에 서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고 계셨어요. “시몬 베드로야! 사단이 밀을 까부르는 것처럼 너희를 시험하려 하고 있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너희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회개한 후에,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다른 제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는 일을 하거라!”

그런데도 베드로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예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주님과 함께 감옥이나 죽는 곳에라도 어느 곳이나 다 따라가겠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에 예수님이 앞으로 되어 질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베드로야!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하는데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눅 22:34)

그리고 예수님이 전격적으로 체포 되자 그 현장에서 제자들은 다 흩어지고 맙니다. 처음에는 베드로는 용감히 칼을 빼어 들어 대항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도 도망칩니다.  나중에 가까스로 용기를 낸 베드로는 예수님을 뒤쫓아가 대제사장 뜰 안까지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이어서 닭이 울자 그는 통곡하며 슬피 웁니다.  이렇게 인간의 연약함은 환경이 주는 공포심 앞에서 그 바닥을 드러납니다.

2025년, 우리가 힘에 겨워 넘어지고 실수했던 순간들을 돌아보십시오. 그 순간들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롬 7장) 우리 내면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어쩌면 거창한 환난이 아니라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오해, 내 진심이 왜곡되었을 때 느꼈던 억울함, 그리고 그 상황 앞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지 못하고 똑같이 혈기를 부렸던 우리 자신의 옹졸함 말입니다. 베드로처럼 ‘나는 다를 것’이라 장담했지만, 막상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 오자 우리는 너무나 쉽게 평안을 잃고 침몰했습니다. 그것이 올 한 해 우리가 마주한 정직한 실력(연약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믿음은, 사실 우리의 의지가 없이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습니다. 인간의 자랑은 반드시 깨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우리의 밑바닥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그의 실패를 모르고 부르신 것이 아니듯, 우리의 이 부끄러운 2025년의 일기장을 다 아시면서도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셨습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붙드시는 은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 붙드시는 은혜

여러분, 일본의 전통 예술 중에 ‘킨츠기(Kintsugi)’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실수로 떨어뜨려 산산조각 난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그 깨진 틈을 금가루와 옻칠로 메우는 기술입니다.

보통 우리는 그릇이 깨지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가 사라졌다고 믿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립니다. 설령 붙인다 해도 어떻게든 그 금이 간 흔적을 숨기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이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킨츠기'는 다릅니다. 오히려 그 깨진 자국을 금으로 찬란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면 그 도자기는 깨지기 전보다 훨씬 단단해질 뿐만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문양을 가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상처'가 '보석'이 되는 순간입니다. (참고, 사진을 보라)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처참하게 깨진 그릇이었습니다. 자신의 자부심도, 믿음도, 인생도 가루가 되어 흩날렸습니다. 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 베드로는 자신을 '더 이상 쓸모없는 깨진 그릇'이라며 내팽개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초대교회의 가장 빛나는 기둥이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이었어요. 예수님은 곧 사단이 베드로를 넘어뜨리기 위해 밀 까부르듯이 무섭게 흔들어 댈 것을 압니다. 지금은 베드로가 큰 소리를 치고 있어요. 그런데 마치 공중에서 맴돌던 매가 목표를 발견하자 급강하하여 병아리를 낚아채듯이 조만간 사단이 두려움으로 엄습할 때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도망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세 번이나 부인할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가 그 실패로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을 보았습니다. 회복될 것을 알았습니다.

(눅 22:32)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

'돌이키면'이 아니라(not if you have turned back) '돌이킨 후에'(when you have turned back)입니다.

주님의 붙잡아 주시는 선행적 은혜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1) “너를 위해 기도하였노니”
베드로가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기 전에, 주님은 이미 베드로를 위해 행동하셨습니다."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눅 22:32a)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실패 이후에 주어지는 후속 조치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기 전에, 우리가 시험에 들기 전에, 예수님은 이미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넘어질 것은 아셨지만, 그가 완전히 멸망하지 않도록 그의 믿음을 붙잡아 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절망의 벼랑 끝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은, 우리가 기도한 결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 때문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2025년 어느 밤, 우리가 실패하고 울며 잠들었을 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붙들고 계섰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셨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를 영원히 멸망치 않게 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8-29)  우리가 좋을 때든, 실패했을 때든, 그 누구도 우리를 이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해를 마감하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큰 위로입니다.

(2)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은 베드로에게 '혹시라도' 돌이킨다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회복을 확신하는 확정적인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2b)

'돌이키면(When you have turned back)'이 아니라, '돌이킨 후에(When you have turned back)'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회복이 예수님의 확신 안에 있는 확정된 미래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패가 아니라, 그의 회복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 확신이 바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붙잡아 주시는 은혜'의 본질입니다. 2025년의 실패와 좌절이 베드로의 세 번 부인보다 크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회복을 확신하고 계십니다.

3. 형제를 굳세게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회복시키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단지 우리 자신을 다시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여기서  '선'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음 구절이 해답을 줍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롬 8:29)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 즉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충동적이고 혈기 왕성했던 베드로가 온유하고 겸손한 사도가 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2025년의 모든 실패까지도 합력하여 결국 우리를 가장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때로는 고난을 허락하시고, 넘어짐을 경험하게 하시는 이유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8-9)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는 은혜의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주어진 사명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회복의 은혜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2025년의 시련을 통해 얻은 겸손과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간증을 가지고, 2026년에 넘어지고 낙심할 다른 형제들을 굳게 세우라는 사명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25년이라는 달력이 단 몇 장, 아니 단 몇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 올해는 승리의 한 해였을지 모르지만, 또 어떤 분들에게는 베드로처럼 닭 울음소리 앞에 고개를 떨궈야 했던 '실패의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건강을 잃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냈을 수도 있으며, 간절히 바랐던 기도 응답이 밀려나 마음이 무너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주저앉아 울고 있던 그 밤에도, 주님은 보좌 우편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영국의 시인 프랜시스 톰슨은 하나님을 '하늘의 사냥개(The Hound of Heaven)'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도망치고, 넘어지고, 배반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와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아주 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2026년이라는 미지의 바다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두렵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2025년을 붙드신 하나님이 이미 2026년 그곳에 먼저 가 계십니다.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여러분의 상처는 이제 누군가를 치유하는 약이 될 것이며, 여러분의 눈물은 누군가를 닦아주는 손수건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붙드신 그 손을 의지하여, 이제 당당히 일어납시다.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2026년 새해에도 여러분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드리며 한 해를 마무리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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