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전선에 서 있습니다 (07.05.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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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41회 작성일 Jul 06 2026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7월 5일
본문: 에베소서 6장 10-20절
제목: 우리는 지금 전선에 서 있습니다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월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밤까지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직장에서는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버텨내야 하고,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은퇴한 후로도 건강도 챙겨야 하고, 손주들의 미래도 걱정해야 하며, 무거운 경제적 부담도 짊어져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오늘 주일 아침,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속으로 이렇게 탄식하셨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정말 전쟁 같았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아마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수고했다,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한다, 딸아.”, “내 품에서 평안을 누려라.” 이런 달콤하고 평안한 말씀을 듣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이 위로와 보상을 얻기 위해 세상 사람들은 황금 주말을 맞이해서 산으로 들로 바다로 동서남북으로 흩으져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서슬 퍼런 단어들을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전쟁”, “싸움”, “마귀의 궤계”, “대적하라”, “갑주”, “방패”, “칼.”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도 전쟁 같은 삶을 살다가 간신히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 와서까지 또 전쟁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까? 예수를 믿으면 모든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라는 위대한 편지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매주 “영적 전투”라는 주제 아래 8차례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기 앞서, 가장 먼저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전쟁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단지 예수를 믿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전쟁의 실체를 똑똑히 보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무기력하게 넘어지는 이유는, 내 삶에 전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전쟁터인 줄을 전혀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지구 건너편에서는 매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몬트레이 지역은 겉으로 볼 때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총알이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폭탄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눈에 보이는 평범한 일상 너머의 거대한 영적 현실을 직시하라고 외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영적으로 보면 우리는 매일 전선 위를 걷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그 사무실이 전선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거실이 전선입니다. 부부가 대화하는 식탁이 전선입니다. 혼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그 방이 전선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내가 모른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전선의 한복판에 서 있는 군인이 “나는 전쟁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날아오던 총알이 피해 갑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방어력을 잃고 쓰러질 뿐입니다.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단의 존재 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심한 상태에 있는 성도입니다. 영국의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가 인간을 파멸시키는 두 가지 극단적인 전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마귀를 지나치게 믿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의 존재를 아예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두 극단을 모두 경계합니다. 마귀를 과장하여 두려움에 떨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담담하지만 아주 준엄하게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성도여, 깨어나라. 너는 지금 전선의 한복판에 서 있다. 너는 지금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씨름하고 있다.”
1.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왜 이 전선에 서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장에 와서야 영적 전투를 말할까요? 왜 1장 첫 마디부터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십시오”라고 경고하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의 답이 에베소서 전체를 관통하는 열쇠이자,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능력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전체는 거대한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된 신분(Identity, 1-3장)에 관한 진술입니다.
•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의 삶(Walk, 4-5장)에 관한 진술입니다.
• 셋째는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투(Warfare, 6장)에 관한 진술입니다.
이 순서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무기가 준비되기 전에, 전술을 익히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나의 신분’입니다. 내가 어느 나라 소속의 군인인지, 내가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용맹해도 방향을 잃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엡 1:3)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야기는 이 땅의 비참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창세 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지만 2장에 들어서면 바울은 우리의 불편한 과거를 사정없이 들추어냅니다. “그 때에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엡 2:1-2)
보십시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단의 이름이 이미 2장에서 등장합니다. 영적 전쟁은 6장에서 갑자기 터진 돌발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노릇하며 사단의 지배 아래 영적으로 죽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장 4절에서 위대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마귀의 참소에 흔들리지 않는 성도는 교회에 오래 다닌 성도일까요? 직분이 높은 성도일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짓말’과 ‘참소’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냐?”, “하나님은 너 같은 죄인을 사랑하지 않으셔.” 이런 마귀의 참소에 넘어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교회 다녔는데도 늘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두렵습니다.” “제가 이러고 살고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에베소서1-3장까지 진술된 복음 위에 굳건히 선 성도는 이 마귀의 속삭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잘해서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네가 믿는 예수 때문에 네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싸움은 새삼스레 승리를 얻기 위해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완벽한 신분을 얻었기 때문에, 그 신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신분에 대한 확신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한 싸움입니다. 만약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여러분의 신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긴 자녀이며,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싸우는가?
우리의 신분이 하늘의 왕족으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물론 많은 특권과 영광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는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품위 있는 걸음걸이가 시작됩니다. 에베소서 4장부터 많은 도덕적, 윤리적 명령들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거짓을 버리라, 분을 품지 말라, 서로 용서하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지만 이 4장과 5장의 명령들을 단순히 ‘도덕 규범’이나 ‘성품 훈련’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는 이 일상생활의 윤리들이 매 순간 치열한 영적 전투이자 방어선을 사수하는 행위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4장 25절에서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26절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명령한 직후, 27절에서 무엇이라 경고합니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연결이 보이십니까? 직장에서 뱉은 사소한 거짓말 하나, 가정에서 쏟아놓은 정제되지 않은 분노 한 자락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방어선에 구멍을 내어 마귀에게 안방 문을 열어주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반대로 내가 오늘 손해를 보더라도 직장에서 정직을 선택하는 것, 내 감정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지만 말씀 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배우자를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아십니까? 세상 눈에는 미련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영적 세계에서는 거대한 천둥이 울립니다. 사단의 진영이 발칵 뒤집히고, 우리 대장 되신 예수께서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 여러분을 향해 기립박수를 치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않고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길입니다.
바울은 5장 16절에서 또 이렇게 외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즉,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시대 자체가 이미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6장 13절에 나오는 ‘악한 날’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종말의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월요일 출근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업무 미팅, 유혹이 밀려오는 홀로 있는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악한 날’이며 영적 전선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쟁은 꼭 술집이나 도박장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열어도 남과 비교, 시기, 음란, 분노, 가짜 뉴스, 끝없는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 밀려옵니다. 사단은 우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타협 하나를 통해 작은 틈새를 만듭니다. 그 작은 틈새가 간격을 벌여서 구멍이 뚫립니다. 그리고 결국 둑이 무너집니다.
우리 어르신들의 전쟁도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기억력이 자꾸 흐려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인가?”하는 바로 그 생각이 바로 싸워야 할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자녀로서 지켜 보호하신다는 진리 위에 굳건히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상의 치열한 전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바울은 5장 18절에서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영적 전투에서 마귀의 간계를 받아치고,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하늘로 부터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공급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다스림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영적 저지선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능히 대적하는 군사로 설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전쟁터에서 가장 위험한 군인은 누구일까요? 자기 적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군인입니다. 가장 위험하고 비극적인 것은 아군을 적으로 착각하여 총을 쏘는 ‘오인 사격(Friendly Fire)’의 경우입니다.
오늘날 사단이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는 가장 고단수의 전략은 우리의 시선을 ‘진짜 적’에게서 ‘사람’에게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서로 피 흘리며 싸우느라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데, 정작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은 박수를 치며 비웃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싸움의 본질을 명확히 선언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은 원수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직장 상사가, 나에게 상처를 준 그 교우가 진짜 원수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영적 피해자일 뿐입니다. 정작 우리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오인 사격을 하며 밤새 울고 있을 때, 그 배후에서 박수를 치며 비웃고 있는 사단의 얼굴을 보셔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눈을 들어 사람 너머의 진짜 적을 직시하십시오. 아군을 향한 오인 사격을 중단하십시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모든 잘못을 “마귀야 물러가라”하며 사단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사단이 아무리 불화의 불씨를 던져도, 내 안에 타오를 만한 ‘죄성의 장작’이 없다면 불은 붙지 않습니다. 사단은 내 안에 없는 죄를 만들어 강제로 짓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 안에 이미 도사리고 있는 교만, 시기, 욕심, 분노라는 마른 장작에 교묘하게 불을 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우는 진정한 영적 전투는 이중적인 전선을 가집니다. 밖으로는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내 안의 옛사람의 정욕을 날마다 십자가 앞에 못 박는 자아의 싸움입니다.
4.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군대입니다 (D-Day와 V-Day)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면 솔직히 우리 마음속에 무거운 부담과 두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목사님, 안팎으로 그렇게 거대한 적들과 매일 싸워야 한다니 너무 피곤하고 힘든 것 아닙니까? 사단이 너무 강해 보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마지막에 이 전쟁 이야기를 꺼낸 목적은 사단을 크게 부각시켜서 우리를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을 발아래 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치르는 이 전쟁은 사실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인간의 대표(둘째 아담)로 이 땅에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내신 전쟁입니다. 첫째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 동산에서 마귀의 유혹에 처참히 패배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신 채 오직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골고다 십자가에서 이 영적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자신이 승리했다고 쾌재를 불렀겠지만, 그것은 사단 최고의 패착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청산하셨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하여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미 사단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일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겪고 있는 것일까요? 신학적 용어에서는 이것을 ‘이미와 아직(Already, Not Yet)의 긴장’이라고 부릅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역사에는 아주 유명한 두 날이 있습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디데이(D-Day)’입니다. 이 상륙 작전이 성공한 순간, 전쟁의 승패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독일의 패망은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바로 종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패배를 직감한 독일군은 더 악을 쓰며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 후 11개월 동안 가장 치열하고 피 비린내 나는 전투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5월 8일, 독일이 공식 항복 문서에 서명한 ‘브이데이(V-Day, 승리의 날)’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이 ‘디데이’와 ‘브이데이’ 사이의 긴장된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디데이는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그날입니다. 사단의 패배는 확정되었습니다. 그의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영광 중에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브이데일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날에 사단과 죄와 사망이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질 것이며, 모든 눈물과 싸움은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단이 발악하며 우리 믿는 자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그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패잔병의 마지막 발악’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며 싸우는 군대가 아닙니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승전가를 부르며 패잔병을 소탕하는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같은 직장으로, 같은 가정으로, 같은 학교로, 같은 병원으로, 같은 일상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세상은 하루 만에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영적인 전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우리가 시작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싸우셨고, 우리보다 먼저 승리하셨으며, 오늘도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다 이겨 놓은 싸움에 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개선 행렬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승리의 영광과 축복을 함께 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혹시 이번 한 주 동안 너무 지쳐 “더는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네 힘으로 싸우지 말아라.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 아침 현관문을 나설 때, 혼자 나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보다 먼저 그 길을 걸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에는 함께 싸우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싸움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선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우리의 주님은 언제나 전선보다 앞장서 계십니다.
날짜: 2026년 7월 5일
본문: 에베소서 6장 10-20절
제목: 우리는 지금 전선에 서 있습니다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월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밤까지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직장에서는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버텨내야 하고,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은퇴한 후로도 건강도 챙겨야 하고, 손주들의 미래도 걱정해야 하며, 무거운 경제적 부담도 짊어져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오늘 주일 아침,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속으로 이렇게 탄식하셨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정말 전쟁 같았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아마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수고했다,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한다, 딸아.”, “내 품에서 평안을 누려라.” 이런 달콤하고 평안한 말씀을 듣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이 위로와 보상을 얻기 위해 세상 사람들은 황금 주말을 맞이해서 산으로 들로 바다로 동서남북으로 흩으져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서슬 퍼런 단어들을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전쟁”, “싸움”, “마귀의 궤계”, “대적하라”, “갑주”, “방패”, “칼.”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도 전쟁 같은 삶을 살다가 간신히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 와서까지 또 전쟁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까? 예수를 믿으면 모든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라는 위대한 편지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매주 “영적 전투”라는 주제 아래 8차례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기 앞서, 가장 먼저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전쟁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단지 예수를 믿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전쟁의 실체를 똑똑히 보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무기력하게 넘어지는 이유는, 내 삶에 전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전쟁터인 줄을 전혀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지구 건너편에서는 매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몬트레이 지역은 겉으로 볼 때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총알이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폭탄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눈에 보이는 평범한 일상 너머의 거대한 영적 현실을 직시하라고 외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영적으로 보면 우리는 매일 전선 위를 걷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그 사무실이 전선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거실이 전선입니다. 부부가 대화하는 식탁이 전선입니다. 혼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그 방이 전선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내가 모른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전선의 한복판에 서 있는 군인이 “나는 전쟁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날아오던 총알이 피해 갑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방어력을 잃고 쓰러질 뿐입니다.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단의 존재 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심한 상태에 있는 성도입니다. 영국의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가 인간을 파멸시키는 두 가지 극단적인 전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마귀를 지나치게 믿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의 존재를 아예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두 극단을 모두 경계합니다. 마귀를 과장하여 두려움에 떨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담담하지만 아주 준엄하게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성도여, 깨어나라. 너는 지금 전선의 한복판에 서 있다. 너는 지금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씨름하고 있다.”
1.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왜 이 전선에 서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장에 와서야 영적 전투를 말할까요? 왜 1장 첫 마디부터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십시오”라고 경고하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의 답이 에베소서 전체를 관통하는 열쇠이자,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능력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전체는 거대한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된 신분(Identity, 1-3장)에 관한 진술입니다.
•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의 삶(Walk, 4-5장)에 관한 진술입니다.
• 셋째는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투(Warfare, 6장)에 관한 진술입니다.
이 순서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무기가 준비되기 전에, 전술을 익히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나의 신분’입니다. 내가 어느 나라 소속의 군인인지, 내가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용맹해도 방향을 잃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엡 1:3)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야기는 이 땅의 비참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창세 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지만 2장에 들어서면 바울은 우리의 불편한 과거를 사정없이 들추어냅니다. “그 때에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엡 2:1-2)
보십시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단의 이름이 이미 2장에서 등장합니다. 영적 전쟁은 6장에서 갑자기 터진 돌발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노릇하며 사단의 지배 아래 영적으로 죽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장 4절에서 위대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마귀의 참소에 흔들리지 않는 성도는 교회에 오래 다닌 성도일까요? 직분이 높은 성도일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짓말’과 ‘참소’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냐?”, “하나님은 너 같은 죄인을 사랑하지 않으셔.” 이런 마귀의 참소에 넘어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교회 다녔는데도 늘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두렵습니다.” “제가 이러고 살고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에베소서1-3장까지 진술된 복음 위에 굳건히 선 성도는 이 마귀의 속삭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잘해서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네가 믿는 예수 때문에 네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싸움은 새삼스레 승리를 얻기 위해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완벽한 신분을 얻었기 때문에, 그 신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신분에 대한 확신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한 싸움입니다. 만약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여러분의 신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긴 자녀이며,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싸우는가?
우리의 신분이 하늘의 왕족으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물론 많은 특권과 영광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는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품위 있는 걸음걸이가 시작됩니다. 에베소서 4장부터 많은 도덕적, 윤리적 명령들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거짓을 버리라, 분을 품지 말라, 서로 용서하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지만 이 4장과 5장의 명령들을 단순히 ‘도덕 규범’이나 ‘성품 훈련’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는 이 일상생활의 윤리들이 매 순간 치열한 영적 전투이자 방어선을 사수하는 행위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4장 25절에서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26절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명령한 직후, 27절에서 무엇이라 경고합니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연결이 보이십니까? 직장에서 뱉은 사소한 거짓말 하나, 가정에서 쏟아놓은 정제되지 않은 분노 한 자락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방어선에 구멍을 내어 마귀에게 안방 문을 열어주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반대로 내가 오늘 손해를 보더라도 직장에서 정직을 선택하는 것, 내 감정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지만 말씀 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배우자를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아십니까? 세상 눈에는 미련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영적 세계에서는 거대한 천둥이 울립니다. 사단의 진영이 발칵 뒤집히고, 우리 대장 되신 예수께서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 여러분을 향해 기립박수를 치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않고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길입니다.
바울은 5장 16절에서 또 이렇게 외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즉,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시대 자체가 이미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6장 13절에 나오는 ‘악한 날’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종말의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월요일 출근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업무 미팅, 유혹이 밀려오는 홀로 있는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악한 날’이며 영적 전선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쟁은 꼭 술집이나 도박장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열어도 남과 비교, 시기, 음란, 분노, 가짜 뉴스, 끝없는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 밀려옵니다. 사단은 우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타협 하나를 통해 작은 틈새를 만듭니다. 그 작은 틈새가 간격을 벌여서 구멍이 뚫립니다. 그리고 결국 둑이 무너집니다.
우리 어르신들의 전쟁도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기억력이 자꾸 흐려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인가?”하는 바로 그 생각이 바로 싸워야 할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자녀로서 지켜 보호하신다는 진리 위에 굳건히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상의 치열한 전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바울은 5장 18절에서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영적 전투에서 마귀의 간계를 받아치고,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하늘로 부터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공급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다스림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영적 저지선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능히 대적하는 군사로 설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전쟁터에서 가장 위험한 군인은 누구일까요? 자기 적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군인입니다. 가장 위험하고 비극적인 것은 아군을 적으로 착각하여 총을 쏘는 ‘오인 사격(Friendly Fire)’의 경우입니다.
오늘날 사단이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는 가장 고단수의 전략은 우리의 시선을 ‘진짜 적’에게서 ‘사람’에게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서로 피 흘리며 싸우느라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데, 정작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은 박수를 치며 비웃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싸움의 본질을 명확히 선언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은 원수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직장 상사가, 나에게 상처를 준 그 교우가 진짜 원수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영적 피해자일 뿐입니다. 정작 우리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오인 사격을 하며 밤새 울고 있을 때, 그 배후에서 박수를 치며 비웃고 있는 사단의 얼굴을 보셔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눈을 들어 사람 너머의 진짜 적을 직시하십시오. 아군을 향한 오인 사격을 중단하십시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모든 잘못을 “마귀야 물러가라”하며 사단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사단이 아무리 불화의 불씨를 던져도, 내 안에 타오를 만한 ‘죄성의 장작’이 없다면 불은 붙지 않습니다. 사단은 내 안에 없는 죄를 만들어 강제로 짓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 안에 이미 도사리고 있는 교만, 시기, 욕심, 분노라는 마른 장작에 교묘하게 불을 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우는 진정한 영적 전투는 이중적인 전선을 가집니다. 밖으로는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내 안의 옛사람의 정욕을 날마다 십자가 앞에 못 박는 자아의 싸움입니다.
4.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군대입니다 (D-Day와 V-Day)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면 솔직히 우리 마음속에 무거운 부담과 두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목사님, 안팎으로 그렇게 거대한 적들과 매일 싸워야 한다니 너무 피곤하고 힘든 것 아닙니까? 사단이 너무 강해 보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마지막에 이 전쟁 이야기를 꺼낸 목적은 사단을 크게 부각시켜서 우리를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을 발아래 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치르는 이 전쟁은 사실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인간의 대표(둘째 아담)로 이 땅에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내신 전쟁입니다. 첫째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 동산에서 마귀의 유혹에 처참히 패배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신 채 오직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골고다 십자가에서 이 영적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자신이 승리했다고 쾌재를 불렀겠지만, 그것은 사단 최고의 패착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청산하셨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하여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미 사단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일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겪고 있는 것일까요? 신학적 용어에서는 이것을 ‘이미와 아직(Already, Not Yet)의 긴장’이라고 부릅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역사에는 아주 유명한 두 날이 있습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디데이(D-Day)’입니다. 이 상륙 작전이 성공한 순간, 전쟁의 승패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독일의 패망은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바로 종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패배를 직감한 독일군은 더 악을 쓰며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 후 11개월 동안 가장 치열하고 피 비린내 나는 전투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5월 8일, 독일이 공식 항복 문서에 서명한 ‘브이데이(V-Day, 승리의 날)’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이 ‘디데이’와 ‘브이데이’ 사이의 긴장된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디데이는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그날입니다. 사단의 패배는 확정되었습니다. 그의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영광 중에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브이데일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날에 사단과 죄와 사망이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질 것이며, 모든 눈물과 싸움은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단이 발악하며 우리 믿는 자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그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패잔병의 마지막 발악’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며 싸우는 군대가 아닙니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승전가를 부르며 패잔병을 소탕하는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같은 직장으로, 같은 가정으로, 같은 학교로, 같은 병원으로, 같은 일상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세상은 하루 만에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영적인 전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우리가 시작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싸우셨고, 우리보다 먼저 승리하셨으며, 오늘도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다 이겨 놓은 싸움에 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개선 행렬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승리의 영광과 축복을 함께 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혹시 이번 한 주 동안 너무 지쳐 “더는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네 힘으로 싸우지 말아라.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 아침 현관문을 나설 때, 혼자 나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보다 먼저 그 길을 걸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에는 함께 싸우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싸움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선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우리의 주님은 언제나 전선보다 앞장서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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