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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06.14.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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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3회 작성일 Jun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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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6월 14일
본문:  누가복음 17:31-33
제목: 롯의 처를 생각하라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번 달 카드 고지서, 자녀의 성적, 새로 산 집의 계약금, 혹은 내일 회사에서 있을 중요한 미팅, 아니면 doctor’s appointment…… 우리는 날마다 눈앞의 현실을 헤쳐 가느라 숨이 찹니다.

구약 성경의 롯의 가족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이 살던 소돔은 죄악으로 가득 찬 곳이었지만, 동시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던’(창 13:10), 물질과 문화가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롯의 아내에게는 평생을 바쳐 일군 내 집이 있었고, 자녀들을 키워낸 안락한 터전이었으며, 통장 잔고와 인맥이 보장된 ‘안전지대’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노아와 롯의 때처럼 일상에 매몰되어 영적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종말의 가장 큰 위기임을 배웠습니다. 어느날 홀연히 종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억울함이 듭니다.

“목사님, 세상에서 성실하게 집 사고, 자식 키우고, 저축하며 산 게 무슨 그렇게 큰 죄입니까? 당장 먹고사는 현실이 이렇게 치열한데 어떡합니까?”

물론 주님은 우리의 성실한 삶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내고, 우리 마음의 중심을 통째로 차지해 버리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자의 날의 긴박함을 말씀하십니다. 번개가 번쩍이듯, 노아의 홍수가 예상치 못한 날 들이닥쳤듯 그 날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주님의 관심은 “그 날이 지금 닥쳐도 너는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가올 심판의 긴박함을 말씀하시며,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가장 현실적이고도 비극적인 한 인물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 놓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한 사람을 주목하게 하십니다. 본문 3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32)

4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짧은 구절지만, 들을 때마다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가장 서늘한 한 마디입니다. 주님은 지금 소돔의 흉악한 죄인들을 생각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심판을 비웃었던 사위들을 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놀랍게도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여 소돔을 빠져나오고 있던’,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결국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를 주목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성공과 안락함에 마음을 빼앗겨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1. 뒤를 돌아본 자의 최후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꼭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롯의 아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는 흔히 그녀를 소돔의 방탕한 죄인들 틈에서 그저 심판을 피하지 못한 안타까운 한 여인 정도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목회자였던 존 C. 라일 목사님은 그의 저서 《거룩》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중요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롯의 아내는 사실, 당대 최고의 영적인 축복과 환경을 누렸던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언약의 약속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소돔성이 무너지던 그 긴박한 밤,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소돔 성을 빠져나오는 특별한 은혜까지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안타깝게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성도 여러분, 라일 목사님은 이 대목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드는 귀한 영적 교훈을 전해줍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적인 환경과 외적인 조건 속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자동으로 변화시키거나 구원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눈으로 천사를 보았고, 발로는 구원의 땅을 밟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몸은 소돔을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소돔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목은 천사에게 붙들려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은 이미 ‘돌이키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도 유황불이 쏟아지는 극도로 긴박한 순간에 내리신 생사의 명령이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바로 그 명령을 어긴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녀가 왜 돌아보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재산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천사는 이미 “뒤를 돌아보지 말라, 들에 머물지 말라”(창 19:17)고 명백히 명령했습니다. 그 명령은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생사가 걸린 즉각적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셨습니다. 천사가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의 긴박함을 끝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멈춰 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이 그녀의 영원을 결정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래 출석했다는 사실이, 직분을 맡았다는 것이, 혹은 믿음의 좋은 가정에서 자라났다는 환경이 내 영혼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몸은 언제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찬송하고 기도하지만, 정작 내 마음의 중심은 세상의 염려와 아쉬움에 사로잡혀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입술로는 “나는 구원받았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너무나 쉽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롯의 처를 기억하십시오. 입술의 고백과 상관없이 여전히 세상을 향해 발을 딛고 있다면, 여기서 돌이키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소금 기둥의 경고판 앞에 정직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2. 지체하는 손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자비

우리는 여기서 롯의 처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심판의 결론에만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롯의 처저럼 될까 봐 두렵습니다. 세상이 너무 좋고,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는 내 연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과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을까?’하고 고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분리해서 말씀합니다. 입술로만 구원을 외치며 삶은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리고 내 연약함 때문에 “내가 과연 구원 받았을까”하며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성경은 구원의 확신을 선언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창세기 19장 16절을 보십시오. 유황불이 쏟아지기 직전, 롯의 가족들은 여전히 세상 미련 때문에 지체하고 미적거렸습니다. 그들은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천사들을 보내사 그들의 손목을 ‘직접 붙잡고, 강제로’ 성 밖으로 끌어내셨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다”라고 선포합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확신은 “내가 뒤를 돌아보지 않을 만큼 완벽한 믿음을 가졌는가”라는 내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미적거리고 지체하는 나의 무능함보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의 힘이 더 세다”는 말씀을 믿는 데서 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손은 매일 흔들리지만, 나를 붙잡으신 하나님의 손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연약함 때문에 “과연 구원받았을까” 두려워하는 성도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그 두려움과 애통함 자체가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지체하는 당신의 손목을 꺾어서라도 성 밖으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자비를 신뢰하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더 의롭거나 거룩해서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우리 역시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소돔의 문화에 취해 멸망의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음의 손길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우리의 영혼을 휘어잡아 이 은혜의 자리, 구원의 대열로 이끌어 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보다,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큽니다. 이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롯의 처의 비극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토록 압도적인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이끌려 가면서도, 그 긴박한 순간에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그토록 크신 은혜를 경험하고도 그녀의 마음은 끝내 세상을 놓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크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긴박한 순간 내 마음의 방향이 문제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3. 잃음으로 얻는 역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롯의 처라는 영적 거울을 우리 앞에 비추어 주신 후, 곧바로 오늘 본문 33절에서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의 법칙을 천명하십니다.
본문 33절을 우리의 심령에 새기며 다 함께 읽겠습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3)

이 말씀은 먼저 31절의 명령으로 연결됩니다. 31절이 ‘지붕에서 내려가지 말라, 밭에서 돌이키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32절에서 롯의 처가 그 명령을 어긴 결과를 보여주었다면, 33절은 그 원리를 법칙으로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자’가 누구입니까? 31절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인자의 날이 번개처럼 닥쳐오는 그 긴박한 순간에, 집 안으로 뛰어 내려가 세간을 챙기는 사람, 밭에서 뒤로 돌이키는 사람, 롯의 아내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그날에는 짐 쌀 시간을 주며 오지 않습니다. 작별 인사를 할 여유를 주고 오지 않습니다. ‘인자의 날’ 그 순간 “내 발이 어디를 향하느냐, 내 시선이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그대로 영원을 결정합니다.

종말의 날에 보일 우리의 반응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가, 그날 내 발걸음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 마음을 유혹하려는 것들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 불확실한 미래 앞에 방황하며 세상 문화로 공허함을 채우려는 청년들
  • 과거의 옛 생활을 곁눈질하며 적당히 타협하려는 초신자 신앙인들
  • 지나온 날들에 대한 집착과 자녀의 성공을 주님보다 더 움켜쥐려는 노년층 신자들

하지만 주님이 선포하시는 영적 법칙은 너무나 단호하고 명백합니다. 마지막 날에 세상의 것을 끝까지 손에 쥐고 보존하려는 자는 가장 소중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요, 반대로 주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의 미련을 과감히 내려놓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힘으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까? 구원은 내가 스스로 이루어 내기 위한 결단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직 소돔을 사랑하여 불구덩이 앞에서 지체하고 있을 때,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의 모든 것을 기꺼이 ‘잃어버리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과 생명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잃어버리심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심판을 자초하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의 대단한 배경과 성공을 과감히 ‘배설물’처럼 여기며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내 의지로 억지로 참아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8).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했기에, 세상 가치관을 기쁘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고정되었던 우리의 시선을 가장 은혜로운 십자가로 돌이키십시오. 썩어 없어질 소돔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십시오. 영광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그 은혜가 우리를 장악할 때, 우리의 시선은 세상에서 돌이켜 앞서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향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그녀는 세상을 움켜쥐려다 영원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비로소 영원을 얻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롯의 처를 생각하라!” 이 주님의 음성 앞에 정직한 영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춰 보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참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따르노라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영광과 미련 때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언저리까지 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의 구원받을 뻔한 사람’만큼 비참한 영혼은 없습니다. 롯의 아내가 변한 소금 기둥은 세상과 타협하려는 우리를 향한 경고판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말씀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이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돌이켜 살리시기 위한 사랑의 초청입니다. 우리를 붙드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사, 우리의 시선이 앞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신앙은 내 의지로 버텨내는 극기훈련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붙들려 가는 여정입니다.

과거의 미련과 세상의 집착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끊어내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전진하십시오. 그 날에 우리 모두가 영광스러운 천국에 넉넉히 입성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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