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한복판에서 누리는 하늘의 평안 (09.06.2026)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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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전쟁 한복판에서 누리는 하늘의 평안 (09.06.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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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43회 작성일 Sep 07 2026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9월 6일
본문: 에베소서 6장 21–24절
제목: 전쟁 한복판에서 누리는 하늘의 평안
설교자: 이강웅 목사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주말은 Labor Day, 노동절 연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쉽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여유를 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을 멈추면 우리의 마음도 쉴 수 있습니까?

몸은 집에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일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는 껐는데 머릿속 계산은 꺼지지 않습니다. 일을 쉬고 있는데도 사업 걱정, 건강 걱정, 자녀 걱정, 관계의 문제와 미래에 대한 염려는 휴일도 없이 계속 일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쉬는 법은 알아도 평안한 법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이민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에게 이것은 단순히 걱정이 많은 성격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새벽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가게 문을 열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온 서류 한 장을 들고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했던 때도 있었고,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앞길을 열어 주어야 할지 걱정하며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습니다.

누가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티는 법을 배웠고, 책임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살아오면서 한 가지 생각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책임져야 해. 내가 해결해야지.”

그래서 손은 일을 멈추어도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문제는 일이 많아서일까요? 그렇다면 일이 줄어들면 평안해야 합니다. 돈이 부족해서라면 돈을 많이 벌면 염려가 사라져야 합니다. 해결 되지 않은 문제 때문이라면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평안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 문제가 지나가면 또 다른 문제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더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혹시 이런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안전하다. 내가 붙들고 있어야 안심이 돼.”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까지 내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내일을 붙들려고 하고, 자녀의 미래와 건강과 사업과 가정을 붙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진정 우리가 그것들을 붙들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이민자들의 이야기만 아닙니다. 사람들 모두에게는 “이것만큼은 내가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자녀일 수도 있고, 건강이나 관계, 재정이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 마음에 진정한 쉼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놀라운 평안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지난 여러 주 동안 에베소서 6장을 따라 영적 전투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며,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들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베소서는 전쟁의 소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네 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위로와 평안과 사랑과 은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는 모든 싸움이 끝난 다음에야 평안을 얻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전쟁터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평안은 우리를 전쟁터에서 도망가게 만드는 평안이 아니라, 다시 굳게 서게 하는 평안입니다.

1. 하나님은 전쟁터에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21절과 22절에서 바울 사도는 두기고를 소개합니다.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리고 그를 보내는 이유를 말합니다.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위대한 사도가 쇠사슬에 묶이다니… 하나님의 일이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복음이 막힌 것은 아닌가,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두기고입니다. 그들에게 바울의 사정을 알려 불필요한 염려를 하지 않도록, 이로 인해 낙담하지 않게 위로하기 위해서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싸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위로하시지만, 때로는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십니다. 전화 한 통을 사용하시고, 함께 흘리는 눈물을 사용하시며, 누군가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위에서 오지만 때로는 옆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도착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단순히 같은 시간에, 같은 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싸움을 함께 감당하도록 묶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내가 지쳤을 때 누군가가 내 곁에 서고, 내가 다시 일어섰을 때에는 내가 또 다른 사람 곁에 서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연휴에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짧게라도 연락해 보십시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두기고처럼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기고가 평안의 근원은 아닙니다. 사람은 곁에 있어 줄 수 있고, 함께 울어 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도 우리 영혼의 마지막 피난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에게서 멈추지 않고, 평안의 근원을 향해 나아갑니다.

2. 그리스도는 전쟁터에서 우리의 화평이 되십니다

23절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입니다.

평안의 근원은 나에게도, 환경에도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평안하기를 먼저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은 이미 선언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생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 부족한 것도, 건강이 나쁜 것도, 사업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것을 끝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평안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느끼는 평안보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객관적인 평화가 먼저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황(환경)과 우리 사이에 아직 평화가 없어도 마음에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문제가 없어지면 평안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화는 내 마음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것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도 허무셨습니다. 그래서 23절에서 바울은 “평안”만이 아니라, “믿음을 겸한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얻은 사람은 관계 속에서도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의 근거는 우리의 감정도, “앞으로는 잘될 것이다”라는 낙관도 아닙니다.

십자가입니다.

에베소서 전체를 보면 놀라운 순서가 나타납니다.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높이셨습니다. 2장에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셔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6장에 와서 비로소 말씀합니다. “굳게 서라.”

이 순서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잘 싸워서 그리스도께 승리를 안겨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평안입니다. 현실을 떠나 하늘로 도피하는 평안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승리가 아직 전쟁 중인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전쟁터로 나가는 성도의 신발을 바울은 “평안의 복음이 예비한 것”이라고 부릅니다. 전쟁터인데 평안의 복음을 신고 들어갑니다.

성도는 평안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평안 위에 서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는(머리로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아직 병이 낫지 않았고,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며, 사업은 어렵고 관계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정말 평안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 질문을 생각하게 하는 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3. 은혜는 전쟁터에서 우리를 다시 서게 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두 군인 사이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고, 밖에는 군인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미 야고보가 헤롯의 칼에 죽었습니다. 동이 트면 베드로 역시 끌려나가 처형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베드로는 자고 있습니다. 아직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고, 쇠사슬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감옥 문도 열리지 않았고, 헤롯도 그대로입니다. 상황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보다 베드로가 오히려 더 자유로운지도 모릅니다. 베드로의 손에는 쇠사슬이 있었지만, 우리는 마음에 쇠사슬을 차고 살아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오늘 밤 미리 앞당겨 걱정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미리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머릿속에서 수십 번 풀어다 묶었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Labor Day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쉼은 어쩌면 이것인지 모릅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지라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서 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어떻게 그렇게 잠들 수 있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음서에서 사도행전까지 그의 인생을 따라가 보면 한 가지 놀라운 변화를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 여종의 질문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날 베드로가 발견한 것은 로마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약한 사람인가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충성과 결심을 믿었지만 모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실패보다 더 놀라운 것도 발견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다시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다시 사명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자기 결심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베드로를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으킨 바로 이 은혜가, 바울이 에베소서를 끝내면서 성도들에게 축복하는 그 은혜입니다.

24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변함없이 잘 사랑해야 은혜를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만 보아도 그의 사랑과 결심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그를 사랑의 자리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은혜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우리를 붙들어 다시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증언하는 것처럼 구원도, 성도의 삶도 은혜입니다. 우리는 흔들릴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다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은혜가 우리를 다시 전쟁터에 세웁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드신다는 사실은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전쟁터에서 빼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전쟁터에 서게 합니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면 싸움은 공포가 됩니다. 한 번 넘어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알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진리로 무장하고 믿음의 방패를 들며 성령의 검을 붙잡고 다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순종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은혜가 순종을 낳고, 붙드심의 확신이 담대함을 낳으며, 평안이 우리를 다시 서게 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6장이 말하는 평안입니다. 싸움을 포기한 사람의 평안이 아니라,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두려움 없이 서 있는 사람의 평안입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몇주 동안 이 영적 전투에 관한 말씀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리로 무장하고, 의와 믿음과 구원을 붙들며, 성령의 검을 들고 기도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의 마지막에 와서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 모든 무장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기 위한 은혜의 무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투의 마지막 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우리의 지난 세월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새벽 어둠 속에서 가게 문을 열었던 날도 있었고, 앞길이 보이지 않아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날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때는 내가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세월 동안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Labor Day에는 몸만 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혼도 쉬게 하십시오.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누르고 있는 한 가지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주님, 제가 해야 할 일은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까지 제가 붙들고 있지 않겠습니다. 제 내일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주무십시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고, 풀리지 않은 쇠사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평안은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왕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분이 다스리고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에는 다시 일어나십시오.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서 오늘 하나님께서 맡기신 한 가지 순종을 하십시오.
평안은 전쟁의 반대가 아닙니다. 평안은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싸우는 성도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에는—
평안히 쉬십시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다시 일어나 굳게 서십시오.

여기까지 붙드신 그 은혜가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붙드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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