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공동체 (07.26.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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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3회 작성일 Jul 27 2026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7월 26일
본문: 여호수아 6:1-16, 20 ; 요 10:3-5
제목: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공동체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인생을 살면서 가장 무기력할 때가 언제일까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세요.선택지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미디어와 수많은 정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마다 인생의 해답을 외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세상에 정보는 넘쳐나는데 우리 영혼의 평안은 오히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생의 길은 수없이 많아졌는데, 정작 내 영혼이 디뎌야 할 참된 진리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이 혼란 속에서, 정작 우리는 ‘내 영혼의 길’을 잃어버린 채 깊은 영적 마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센 소음과 불확실성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까요?
사실 교회 공동체가 통과하는 여정은 우리의 인생길과 깊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를 새로운 순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급격한 상황의 변화일 수도 있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역사적인 발걸음일 수도 있습니다. 익숙했던 계절이 끝나고 전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 시작될 때, 우리는 가슴 벅찬 기대와 함께 막연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 하나님은 과연 어떤 은혜를 예비해 두셨을까?”
이런 전환기의 폭풍 속에 놓인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성경은 정확하게 ‘양’이라고 비유합니다. 여러분, 양은 유순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력이 극도로 나쁩니다. 바로 앞에 깊은 웅덩이가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참된 생명의 길인지, 이리가 파놓은 덫인지 스스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맹수를 막을 발톱도 없고, 도망칠 빠른 다리도 없습니다. 세상의 유혹 앞에 완전히 무방비한 ‘눈먼 양’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이 눈먼 양들이 거친 광야와 거짓 목자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푸른 초장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 ‘목자의 음성을 정확히 알고 그 뒤를 좇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은 따르지 아니하느니라" (요 10:4-5)
우리가 삶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좇아가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똑똑한 사람들의 전략이나 다수결 의견을 좇는 곳이 아닙니다. 참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공동체 전체가 주파수를 맞추고 함께 걸어가는 ‘순종과 은혜의 군대’가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여호수아 6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거대한 성벽 앞에 서 있는 ‘백성들이 어떻게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성숙해져 가는가’하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펼쳐진 이 첫 번째 순종의 현장을 통해, 주님이 오늘 우리 공동체를 어떻게 연단하시고 성숙으로 이끄시는지 그 깊은 영적 원리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지금 여호수아와 함께 여리고 성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훈련 받은 새로운 세대였습니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세대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는 늘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시선을 빼앗겼다는 점입니다.
물이 없으면 목마름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고, 먹을 것이 단조로우면 과거 애굽의 풍요가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정탐 사건 때에는 거대한 아낙 자손들과 하늘을 찌를 듯한 견고한 성벽이 하나님보다 훨씬 더 크게 보였습니다. 눈앞의 현실에 완전히 압도된 그들은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절망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13:33)
그들의 실패는 무기가 부족하거나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눈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현실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리고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차원의 훈련을 받습니다.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먼저 공성 사다리를 만들고, 날카로운 무기를 점검하며, 군사들을 배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수 6:3-4)
이것은 군사 전략이 아닙니다. 이것은 난공불락의 성벽이라는 거대한 현실보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크게 신뢰하도록 이끄시는 깊은 ‘시선의 훈련’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매일 여리고 성을 만납니다.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검사 결과 앞에 무너지는 성도가 있고, 자녀의 진로와 막막한 경제적 문제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의 전환기 앞에도 여리고 성은 버티고 서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압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이란, 모든 상황이 내 머리로 이해된 후에 움직이는 납득이 아닙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첫발을 내딛는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성을 돌면서 성벽 위에서 자신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여리고 군사들의 눈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앞서 행하시는 '언약궤'를 바라보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의 사랑 안에 붙들린, 주님의 소중한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아무리 크게 보여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보다 언제나 더 크십니다.
2. '침묵'을 넘어 '함께 목자의 음성'을 들으라
여리고 성을 도는 장면 가운데 가장 놀라운 모습은 수십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히 침묵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수 6:10)
본문에서는 왜 침묵을 명하셨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40년의 거친 광야 역사를 깊이 대조해 볼 때, 이 명령이 지닌 영적 무게와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거 광야 세대는 어땠습니까? 조금만 목이 마르면 불평했고, 길이 험하면 원망했습니다. 말이 기도의 속도보다 언제나 앞서 달렸던, 그것이 바로 광야의 뿌리 깊은 불신앙의 체질이었습니다.
반면에 여리고 성 앞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날 성을 한 바퀴 돌 때 잠잠했습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잠잠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다 도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도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지칠 대로 지치고, 회의감이 극에 달했을 그 순간, 여호수아가 “외치라!”고 명령하기 바로 직전까지 수십만 명의 백성들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내 생각과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적극적인 순종입니다.
광야의 세대가 불평의 말이 앞섰다면, 순종의 세대는 거룩한 침묵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여리고성 앞에서의 침묵은 '말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공동체 역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끌어 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
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서두르지 말고 내 음성을 함께 들으라."
전환기의 공동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잠잠히 기다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은 백성들의 뛰어난 전략이나 수많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다렸으며, 하나님의 때에 함께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함께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한마음으로 순종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모든 절제와 일사불란함 속에서 끝까지 순종의 대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절대적인 원동력은, 그 행렬의 한가운데에 오직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장한 군사들이 제일 앞에 서고, 그 뒤를 일곱 양각 나팔을 잡은 일곱 제사장들이 따르며, 그 바로 뒤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행진합니다. 그리고 후군인 나머지 백성들이 그 언약궤의 뒤를 묵묵히 따랐습니다.
이 순종의 행렬 한가운데에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궤’가 요지부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장이신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양 무리의 가장 정상적이고 건강한 모습입니다. 양들은 결코 각자도생하며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시력이 나쁜 양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대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양 무리의 한가운데에 인도하는 목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걷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며, 하나님은 때마다 새로운 일꾼들을 세우시고 또 교체해 가십니다. 담임목사도 바뀌고, 교회 안의 직분자도 바뀌며, 세대도 끊임없이 바뀝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공동체의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결코 바뀌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찾기에 앞서 주님의 음성을 온전히 함께 듣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광야의 연단을 통과한 새로운 세대가 여리고 성 앞에서 놀라운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의인들이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리고의 승리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아간 사건과 기브온 사건을 통해 계속 넘어졌습니다.
우리 역시 허물이 많고 실수하기 쉬운 연약한 양들입니다. 때로는 의견이 갈리고 인간적인 생각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내 생각과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도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의 중심에 참된 언약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의 임재 앞에 겸손히 나를 복종시키며 한 걸음씩 보조를 맞추는 훈련을 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중심축이 견고할 때, 그 공동체는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단 한 마디 말씀만으로도 여리고 성을 단숨에 무너뜨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레 동안 침묵하며 성을 돌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함께 순종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외적인 승리 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매일 침묵 속에 성을 돌던 그 인내의 발걸음 속에서, 백성들 내면에 도사리던 원망과 조급함과 교만한 자기주장이 먼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내면의 무너짐이 완성되었을 때, 외적인 성벽도 마침내 무너졌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선한 목자의 음성을 함께 듣는 공동체가 되는 것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함께 연합하여 걷는 ‘순종의 백성’을 세우는 일을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위대한 여리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는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지만 참된 안식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여리고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고, 참된 안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따라 순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께서 먼저 우리를 붙드시고 끝까지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가 한층 더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결단합시다.
1.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공동체가 됩시다.
2. 사람의 소리보다 기도의 자리를 선택합시다. 확인되지 않은 소리나 염려의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흔들기보다, 먼저 기도의 자리로 깊이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공동체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3.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읍시다. 전환기의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연합입니다. 교회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함께 걸어가는 양 무리임을 기억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킵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쉽게 길을 잃고 두려워하는 연약한 양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광야를 지나게 하실 때에도, 여리고 성 앞에 세우실 때에도, 새로운 계절로 인도하실 때에도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미래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공동체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함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한 때 우리 앞의 모든 여리고 성벽을 허무시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참된 안식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날짜: 2026년 7월 26일
본문: 여호수아 6:1-16, 20 ; 요 10:3-5
제목: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공동체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인생을 살면서 가장 무기력할 때가 언제일까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세요.선택지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미디어와 수많은 정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마다 인생의 해답을 외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세상에 정보는 넘쳐나는데 우리 영혼의 평안은 오히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생의 길은 수없이 많아졌는데, 정작 내 영혼이 디뎌야 할 참된 진리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이 혼란 속에서, 정작 우리는 ‘내 영혼의 길’을 잃어버린 채 깊은 영적 마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센 소음과 불확실성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까요?
사실 교회 공동체가 통과하는 여정은 우리의 인생길과 깊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를 새로운 순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급격한 상황의 변화일 수도 있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역사적인 발걸음일 수도 있습니다. 익숙했던 계절이 끝나고 전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 시작될 때, 우리는 가슴 벅찬 기대와 함께 막연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 하나님은 과연 어떤 은혜를 예비해 두셨을까?”
이런 전환기의 폭풍 속에 놓인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성경은 정확하게 ‘양’이라고 비유합니다. 여러분, 양은 유순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력이 극도로 나쁩니다. 바로 앞에 깊은 웅덩이가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참된 생명의 길인지, 이리가 파놓은 덫인지 스스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맹수를 막을 발톱도 없고, 도망칠 빠른 다리도 없습니다. 세상의 유혹 앞에 완전히 무방비한 ‘눈먼 양’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이 눈먼 양들이 거친 광야와 거짓 목자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푸른 초장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 ‘목자의 음성을 정확히 알고 그 뒤를 좇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은 따르지 아니하느니라" (요 10:4-5)
우리가 삶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좇아가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똑똑한 사람들의 전략이나 다수결 의견을 좇는 곳이 아닙니다. 참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공동체 전체가 주파수를 맞추고 함께 걸어가는 ‘순종과 은혜의 군대’가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여호수아 6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거대한 성벽 앞에 서 있는 ‘백성들이 어떻게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성숙해져 가는가’하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펼쳐진 이 첫 번째 순종의 현장을 통해, 주님이 오늘 우리 공동체를 어떻게 연단하시고 성숙으로 이끄시는지 그 깊은 영적 원리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지금 여호수아와 함께 여리고 성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훈련 받은 새로운 세대였습니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세대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는 늘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시선을 빼앗겼다는 점입니다.
물이 없으면 목마름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고, 먹을 것이 단조로우면 과거 애굽의 풍요가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정탐 사건 때에는 거대한 아낙 자손들과 하늘을 찌를 듯한 견고한 성벽이 하나님보다 훨씬 더 크게 보였습니다. 눈앞의 현실에 완전히 압도된 그들은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절망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13:33)
그들의 실패는 무기가 부족하거나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눈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현실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리고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차원의 훈련을 받습니다.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먼저 공성 사다리를 만들고, 날카로운 무기를 점검하며, 군사들을 배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수 6:3-4)
이것은 군사 전략이 아닙니다. 이것은 난공불락의 성벽이라는 거대한 현실보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크게 신뢰하도록 이끄시는 깊은 ‘시선의 훈련’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매일 여리고 성을 만납니다.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검사 결과 앞에 무너지는 성도가 있고, 자녀의 진로와 막막한 경제적 문제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의 전환기 앞에도 여리고 성은 버티고 서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압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이란, 모든 상황이 내 머리로 이해된 후에 움직이는 납득이 아닙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첫발을 내딛는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성을 돌면서 성벽 위에서 자신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여리고 군사들의 눈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앞서 행하시는 '언약궤'를 바라보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의 사랑 안에 붙들린, 주님의 소중한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아무리 크게 보여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보다 언제나 더 크십니다.
2. '침묵'을 넘어 '함께 목자의 음성'을 들으라
여리고 성을 도는 장면 가운데 가장 놀라운 모습은 수십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히 침묵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수 6:10)
본문에서는 왜 침묵을 명하셨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40년의 거친 광야 역사를 깊이 대조해 볼 때, 이 명령이 지닌 영적 무게와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거 광야 세대는 어땠습니까? 조금만 목이 마르면 불평했고, 길이 험하면 원망했습니다. 말이 기도의 속도보다 언제나 앞서 달렸던, 그것이 바로 광야의 뿌리 깊은 불신앙의 체질이었습니다.
반면에 여리고 성 앞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날 성을 한 바퀴 돌 때 잠잠했습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잠잠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다 도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도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지칠 대로 지치고, 회의감이 극에 달했을 그 순간, 여호수아가 “외치라!”고 명령하기 바로 직전까지 수십만 명의 백성들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내 생각과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적극적인 순종입니다.
광야의 세대가 불평의 말이 앞섰다면, 순종의 세대는 거룩한 침묵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여리고성 앞에서의 침묵은 '말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공동체 역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끌어 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
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서두르지 말고 내 음성을 함께 들으라."
전환기의 공동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잠잠히 기다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은 백성들의 뛰어난 전략이나 수많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다렸으며, 하나님의 때에 함께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함께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한마음으로 순종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모든 절제와 일사불란함 속에서 끝까지 순종의 대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절대적인 원동력은, 그 행렬의 한가운데에 오직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장한 군사들이 제일 앞에 서고, 그 뒤를 일곱 양각 나팔을 잡은 일곱 제사장들이 따르며, 그 바로 뒤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행진합니다. 그리고 후군인 나머지 백성들이 그 언약궤의 뒤를 묵묵히 따랐습니다.
이 순종의 행렬 한가운데에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궤’가 요지부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장이신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양 무리의 가장 정상적이고 건강한 모습입니다. 양들은 결코 각자도생하며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시력이 나쁜 양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대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양 무리의 한가운데에 인도하는 목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걷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며, 하나님은 때마다 새로운 일꾼들을 세우시고 또 교체해 가십니다. 담임목사도 바뀌고, 교회 안의 직분자도 바뀌며, 세대도 끊임없이 바뀝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공동체의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결코 바뀌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찾기에 앞서 주님의 음성을 온전히 함께 듣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광야의 연단을 통과한 새로운 세대가 여리고 성 앞에서 놀라운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의인들이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리고의 승리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아간 사건과 기브온 사건을 통해 계속 넘어졌습니다.
우리 역시 허물이 많고 실수하기 쉬운 연약한 양들입니다. 때로는 의견이 갈리고 인간적인 생각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내 생각과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도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의 중심에 참된 언약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의 임재 앞에 겸손히 나를 복종시키며 한 걸음씩 보조를 맞추는 훈련을 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중심축이 견고할 때, 그 공동체는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단 한 마디 말씀만으로도 여리고 성을 단숨에 무너뜨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레 동안 침묵하며 성을 돌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함께 순종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외적인 승리 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매일 침묵 속에 성을 돌던 그 인내의 발걸음 속에서, 백성들 내면에 도사리던 원망과 조급함과 교만한 자기주장이 먼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내면의 무너짐이 완성되었을 때, 외적인 성벽도 마침내 무너졌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선한 목자의 음성을 함께 듣는 공동체가 되는 것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함께 연합하여 걷는 ‘순종의 백성’을 세우는 일을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위대한 여리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는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지만 참된 안식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여리고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고, 참된 안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따라 순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께서 먼저 우리를 붙드시고 끝까지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가 한층 더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결단합시다.
1.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공동체가 됩시다.
2. 사람의 소리보다 기도의 자리를 선택합시다. 확인되지 않은 소리나 염려의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흔들기보다, 먼저 기도의 자리로 깊이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공동체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3.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읍시다. 전환기의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연합입니다. 교회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함께 걸어가는 양 무리임을 기억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킵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쉽게 길을 잃고 두려워하는 연약한 양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광야를 지나게 하실 때에도, 여리고 성 앞에 세우실 때에도, 새로운 계절로 인도하실 때에도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미래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공동체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함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한 때 우리 앞의 모든 여리고 성벽을 허무시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참된 안식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