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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주일예배

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평안하뇨 (04.05.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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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20회 작성일 Apr 06 2026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4월 5일
본문: 마태복음 28:1-10
제목: 평안하뇨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예수님은 로마제국 당시 가장 참혹한 처형수단이었던 십자가 형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사랑하며 추종하던 이들의 심리와 정신적 상태를 상상해 보십시오.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지진, 폭풍, 붕괴, 충격, 공포, 두려움, 비통, 절망, 포기 등등 일 것입니다. 이제 무덤에 묻힌 지 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입니다. 삼일째 안식일이 지난 이른 주일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부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 왔습니다(막 16:1). 극한 슬픔 속에서 거의 정신 줄을 놓은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에서 마태기자는 부활사건이 초자연적 사건임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아주 생생히 전달해 줍니다.

(마 28:2-3)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재지변인 지진과 아울러 천사가 출현하는 광경을 목격한 경비병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까무러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사건이 그만큼 충격적인 초자연적 현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과 충격, 두려움, 무서움, 공포, 등등의 상황 가운데 여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던진 첫 번째 인사말은 “평안하뇨?”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물으신 '평안하뇨'는 히브리인들의 인사말인 ‘샬롬’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걱정 없는 상태’를 넘어선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으니 진정한 평안이 있을 리 없었죠.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샬롬’은 ‘이제 너희와 하나님 사이의 전쟁이 끝났다,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승리 선포입니다.

또한 ‘샬롬’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인데, 이는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하나로 맞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난으로 깨지고 조각난 우리의 마음, 무너진 가정을 주님의 부활 생명으로 다시 온전하게 이어 붙이시겠다는 ‘총체적 회복’의 약속이 바로 이 ‘평안하뇨’라는 한 마디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위태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세상은 마치 변덕스러운 바다와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물결이 잔잔하여 항해가 순조롭습니다. 모든 게 한가하고 평화롭습니다. 모두가 인생을 즐기며 즐겁게 삽니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각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풍이 불면서 바다가 출렁이기 시작합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데 순식간에 모든 안정과 평온한 일상생활이 다 깨지고 맙니다. 연이어 파도가 밀려와서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리고 갈 것처럼 생명과 생존을 위협합니다. 위기의 순간이요 절규와 참담의 시기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충격이고 놀라움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일상의 평안과 평화를 빼앗아 가는 것들이 항상 상존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평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마치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평안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실제 삶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두려움을 쫓아내시며 평안을 주십니까?

첫째로, 현실적인 문제 가운데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경제 불황이 찾아오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영적으로도 더 깊은 침체에 빠지며, 사회가 갈수록 더 부패해집니다. 가정에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직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습니다. 자녀의 가정이 깨집니다. 검진 결과 중한 병이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쉽게 평안을 잃어버리고 불안해하고, 염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다스리고 계신다면 믿음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분이 현재 상황을 통제하십니다. He is in control!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묻힘으로써 상황 종료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삼일 후 다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사도 요한은 훗날 이 영광의 주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3-18입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눈은 불꽃같았고 발은 풀무불에 단 놋쇠 같았으며 음성은 큰 물소리 같았습니다.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나왔고 얼굴은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나는 그분을 뵙자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분의 발 앞에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오른손을 얹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존재이다. 나는 죽었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고 영원무궁토록 살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있다.’”

이분이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인생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현실적인 문제로 잠시 근심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평안을 얻습니다.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둘째로, 죄책감으로 인한 괴로움 속에서 있는 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죄는 우리를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다윗이 범죄 한 후 죄의식으로 인하여 당한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 38:4-6)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이처럼 죄책감은 우리 영혼을 망가뜨리고, 우리 육신을 약하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의로운 피입니다. 거룩한 피입니다. 그 피를 방울방울 흘려주셔서 우리의 죄를 깨끗히 씻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이를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정죄가 없습니다. 심판이 지나갔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죽음의 공포 가운데도 평강이 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또 그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를 믿는 신앙을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고서, 그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다가 다시 깨어나는 것처럼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결론: 헤롯왕은 예루살렘 교회를 무자비하게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야고보 사도를 칼로 목 베여 죽였습니다. 이를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자 이번에는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붙잡았습니다.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고 쇠사슬에 묶어 군사를 넷씩 네 패로 나누어 지키게 했습니다.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처형되기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군사들 틈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평안히‘누워’잠들어 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그의 옆구리를 차기까지 깊이 잠들어 있었어요. 이것이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두려움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정합니다. 그런 베드로였는데 지금 평안히 깊은 잠이 잡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함 때문입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조건적이지 않고 무조건적입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와 불안으로 마음이 눌려 있는 분이 계십니까?  마음의 눈을 주님께 고정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임하시면 폭풍이 몰아치는 한 가운데서도 갑자기 고요함이 임합니다. 놀라운 평안이 찾아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입니다. 오늘 이 아침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경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평강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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