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1-12
서론: 미국의 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Tony Campolo) 박사가 95세 이상 된 사람 50명에게 만약 다시 한 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이 첫 번째로 꼽은 것은 “날마다 반성하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런 되새김 없이 무심코 흘려보낸 자신의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지나온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계획하는 삶은 하루하루를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듭니다.
둘째는 “용기 있는 삶”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양심을 버리고 불의와 타협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지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외면하며 산 날들이 이제 뼈아픈 상처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셋째는 “죽은 후에도 무언가 남는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지금까지 목표를 세우고 꿈을 꾸며 힘들게 달려왔지만 그게 다 물거품처럼 없어지고 마는 허망한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없어지지 않을 것들, 참된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겠다는 대답에서 우리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벌써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올해 어떤 분들은 큰 시련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한 해를 보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무난히 한 해를 보냈습니다. 각자에게 어떤 한 해가 되었든지 우리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또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서고 보니 너무도 아쉬움과 후회가 많습니다. 물론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후회스러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인생이 되고자 하는 것이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를 의미 있는 인생,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생으로 인도합니다. 이 땅에 수많은 인생길이 있지만 후회가 없는 영원한 길은 기독교 진리 가운데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살 때 마음에 천국을 이루며 사는 길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질 때 기쁨과 평강이 우리 마음속에 넘치게 될 것이고 우리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나 오해, 그리고 무지 가운데 이 복된 길을 놓쳤습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였을 때 놀랍게도 유대인들은 거절했습니다. (요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를 거부하였을까요? 그리고 왜 메시야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까요? 왜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야가 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들이 원하는 메시야는 정치 문제, 경제 문제, 사회 문제 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자라야 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오늘 현대인들의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현대인들이 기대하는 천국이란 아주 물질적이고 현세적입니다. 문제가 없는 나라, 고통이 없는 나라, 물질적으로 풍요한 나라, 그래서 모두 다 행복한 나라를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우선 로마군대를 쫓아내어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이 부강한 나라를 세울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메시야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 주시지 않았어요. 그들이 억지로 왕으로 세우고자 할 때 그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문제의 근원이 경제, 정치, 사회 문제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환경과 조건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왜 죄를 지었을까요? 에덴동산에는 행복의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었어요. 부족한 것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락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에 천국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흔히 천국을 생각하면 우리가 죽을 때 자동으로 가는 낙원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것을 상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천국에 대해 얘기할 때, 즉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왕 되심, 즉 하나님의 통치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가 이제 예수를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고 산다면 내게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이 천국이 우리 마음에 임할 때 우리의 마음은 부요해 지며 만족하게 되고 샘솟듯 기쁨이 솟구치게 됩니다.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며 하나님 나라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왕이 되신 주님을 거절함으로 천국의 축복을 놓친 것입니다. 대강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겠습니다. 내 마음에 천국이 임하였는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내 삶을 다스리고 계신지를. 혹시 그분을 문밖에 두고 있지는 않는지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게 할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의 외침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합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은 말구유, 목자들, 밤하늘 별들과 천사들의 노래, 그리고 동방박사들로 표현되는 크리스마스의 흥겨운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타입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약대 털옷을 입었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더부스룩한 수염과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 그리고 무섭게 책망하는 강렬한 설교, 우리가 선뜻 가까이 다가서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성탄절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입니다. 오히려 복음서 기자는 세례 요한이야말로 성탄절을 맞이할 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와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려면 높은 곳을 깎아내고 낮은 곳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의 첫 일성이 무엇입니까? 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는 천국이 임박했다는 아주 감격적인 메시지와 함께 이를 위해서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흥분 되고, 얼마나 마음이 설레겠습니까? 그저 즐거이 뛰어 나가 꽹과리를 치고, 팡파레를 울리며 축포를 쏘아 올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로마의 압제아래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는 천국이 가까워 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 요한은 무엇을 하라고 말합니까?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회개’는 헬라 원어로‘메타노에오’입니다.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아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또 다른 의미는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180도 방향전환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를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던 둘째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15: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회개입니다. 아버지를 등지고 살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 살던 죄인이 그분의 품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피조물의 자리를 이탈한 것을 말합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이 되신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이후 모든 인간은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그리고 마치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 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없이 살던 죄인이 어느 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삶에 대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애통해 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킵니다.
우리가 천국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토로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오늘 본문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의 회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다 요한에게 나아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스스로 나아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 속에는 자신의 죄 문제를 털어놓고 회개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마음 문을 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회개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빈 마음에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진 심령에 천국의 은총이 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이 충만하게 임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단순히 회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무만 보시지 않고 그 나무가 맺고 있는 열매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8, 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 아주 직설적으로 그들의 죄를 책망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7절)
성경에서 독사, 뱀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사단은 그 속성이 거짓되기 때문에 자신의 속셈을 숨기고 교묘하게 역사합니다. 사단은 독사와 같이 그 속에 독이 있어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위에 도전이 된다 싶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감시하러 온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무섭게 책망한 것입니다. 지금 빨리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지금 빨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 속에 감추어진 죄를 끄집어내서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의 이 예언적 메시지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이때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그 악독한 마음을 회개했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런 악한 죄는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철판을 깐 것처럼 단단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완고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종교지도자들에게 더 엄중한 책망을 했던 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고상하고 거룩한 체 하였지만 속마음은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탐심, 시기심과 미움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들의 옷은 고상하고 멋있었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더럽고, 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에 마음이 교만해져서 회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도 스스로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옷을 입었는데 그 속마음은 어떻습니까? 과연 천국시민으로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처럼 세례 요한 앞에 섰던 사람들도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눅 3:11-14).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그 당시 욕을 먹던 세리들도 와서 묻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법에 정해진 만큼만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라”
군병들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기소하여 돈을 강탈하지 말라. 받은 월급으로 족한 줄로 알라”
회개를 거창한 것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부터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올해를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보면 한두 가지 고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해도 내 자신만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이유, 저런 구실을 붙이면서 자꾸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이 있지 않았어요?
12절을 보십시오.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면 모든 인생들을 올려놓고 키질을 하실 것입니다. 곡식을 까불면 알곡만 남고 쭉정이는 모두 바람에 불려 날아가게 됩니다. 얼른 보기에는 알곡이나 쭉정이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무늬는 모두 다 신실한 신자요, 믿음이 좋은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키질을 해 보면 그 내용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알곡은 쌓이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불려 날아갑니다. 그러면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엄정하게 집행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심판 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의인들은 천국 잔치에, 악인들은 심판의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회개는 사단 왕국에 속한 내가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향하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 이미 천국은 임한 것입니다.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 마음에 의와 평화와 기쁨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살 수 있어요.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더 이상 세상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법에 따라 진실하게, 의롭게, 거룩하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에 영향력을 갖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서 놀람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보면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심지어 그들을 핍박하면서도 그들은 두려워하고 부러워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세상 왕국입니까? 하나님 왕국입니까? 분명히 하나님 왕국에 속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왕 되심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그 분의 왕권에 기꺼이 순복하십니까? 주님이 “진실로 내가 속히 오리라”말씀하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전심으로 화답하십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성찰해 볼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에 천국이 임할 줄 믿습니다.









